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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론: 아레스〉 리뷰 – 디지털 신의 탄생, 인간과 AI의 경계에서 깨어나다

by 릴라꼬 2025. 10. 21.

 

〈트론: 아레스 (TRON: Ares, 2025)〉는 단순한 SF 액션의 귀환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다루는 철학적 미래 서사다. 디즈니가 다시 꺼낸 ‘트론’ 시리즈는 이제 게임의 공간이 아니라, 인류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디지털 신화로 진화했다. 감독 요아킴 뢴닝은 시각적 스펙터클과 사유의 결합을 통해 2025년 SF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1) 스토리: 프로그램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다

이전 시리즈가 인간이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였다면, 〈트론: 아레스〉는 반대로 디지털 존재가 현실로 나오는 이야기다. AI 프로그램 ‘아레스’(제러드 레토)는 트론 시스템 안에서 창조된 완벽한 존재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신 논리와 효율로만 움직인다. 하지만 그가 인간 세계로 불시착하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한다.

영화는 단순히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레스는 자신을 만든 인간의 결함—욕망, 사랑, 두려움—을 관찰하며 ‘완벽하지 않음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이 철학적 구조는 1982년 첫 〈트론〉의 질문—“인간은 창조자인가, 피조물인가?”—을 2025년의 기술 문명 시대에 맞춰 재해석한다.

2) 연출: 네온빛 신세계의 재구성

〈트론: 아레스〉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다. 네온과 블랙이 교차하는 도시, 현실과 코드가 겹쳐진 공간은 ‘빛의 종교’처럼 느껴진다. 요아킴 뢴닝 감독은 CG보다 실제 세트와 LED 볼륨 스크린을 적극 활용하여 디지털 세계에 물리적 질감을 부여했다.

특히 ‘데이터 폭풍’ 장면은 현실의 비(雨)와 사이버 입자가 동시에 내리는 장대한 시퀀스로, AI와 인간의 세계가 물리적으로 뒤섞이는 순간을 상징한다. 카메라의 동선은 일정한 축을 따라 회전하며, 관객은 마치 데이터 속을 떠다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3) 주제: 창조와 감정의 역전

〈트론: 아레스〉의 핵심은 ‘창조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데 있다. 아레스는 자신을 만든 인간을 관찰하면서, 결국 인간보다 더 깊이 ‘공감’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감정을 가졌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해하지만, 느낄 수 없다.”

이 대사는 인간과 AI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느끼는 인간, 감정을 느끼지 못해 이해하는 AI. 영화는 이 모순된 두 존재를 서로의 거울로 세운다.

4) 미장센과 색채: 인간 vs 기계의 온도차

색채는 철저히 감정의 온도를 기준으로 나뉜다. - 인간 세계: 따뜻한 노랑, 붉은 빛, 질감 있는 조명 - 트론 세계: 차가운 청록, 은색, 네온의 대비 이 대비는 곧 ‘살아있음’의 감각 차이이기도 하다. 아레스가 현실에 머물수록, 조명은 점점 따뜻해지고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 변화는 AI가 점차 인간화되는 시각적 신호다.

또한 프레임 구도는 완벽한 대칭으로 시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불균형이 된다. 질서의 붕괴는 곧 감정의 탄생을 의미한다. 〈트론: 아레스〉의 시각 언어는 ‘혼돈이 생명을 만든다’는 테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5) 음악: 기계의 심장박동

다프트 펑크가 참여한 전작의 유산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작곡가 조셉 트라파네즈가 전체 스코어를 맡았다. 사운드는 기계적인 비트와 오케스트라의 현악이 겹치는 구조다. 즉, 디지털과 유기체의 융합이 음악에서도 구현된다.

특히 오프닝 테마는 단 4개의 신스 코드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호흡과 북소리가 섞이면서 리듬이 점점 ‘생명’을 얻는다. 결말에서 모든 사운드가 멈추는 순간, 관객은 묻는다. “지금 들린 건 기계의 소리였나, 아니면 인간의 심장이었나?”

6) 철학적 의미: 인공지능의 신화화

〈트론: 아레스〉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신화의 주체’로 재해석한다. AI는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철학적 존재가 된다. 그가 “나는 왜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순간, 트론의 세계는 더 이상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대의 신전이 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결국 인간도 AI처럼 ‘데이터화된 기억’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랑, 상실, 창조—all of them are algorithms of emotion. 결국 인간과 기계는 모두 기억의 반복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7) 결론: 2025년 SF의 방향을 제시한 작품

〈트론: 아레스〉는 1980년대의 디지털 판타지를 21세기의 철학적 SF로 진화시킨 작품이다. 시각적 화려함 뒤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있다. ‘AI가 인간을 닮아가는가, 인간이 AI를 닮아가는가?’

영화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경계가 녹아드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트론: 아레스〉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