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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리뷰 – 선택과 타협의 끝에서, 인간의 진심이 드러나다

by 릴라꼬 2025. 10. 21.

 

〈어쩔 수가 없다 (2025)〉는 제목처럼 인간이 스스로를 변명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이라는 배우들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욕망을 드러내며, 도덕과 생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냉혹한 스릴러를 완성했다. 감독은 ‘악’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까?” 이 영화는 그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 인간의 핑계를 해부한다.

1) 줄거리: 우연한 거래, 걷잡을 수 없는 파국

영화는 대기업의 고위 임원 ‘한도현’(이병헌)이 자신의 회사 비리와 관련된 내부 문건을 은폐하려다 예상치 못한 인물과 얽히며 시작된다. 그 인물은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기자 ‘서윤’(손예진). 그녀는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도현은 가족과 회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한편, 전직 형사 출신 사설조사원 ‘박상호’(박희순)는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며 서로의 약점을 이용한다. 이성민이 맡은 국회의원 ‘최강식’은 도현과 서윤의 싸움에 개입하며 권력의 냄새를 풍긴다.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이유로 움직이는 이 구조 속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2) 인물과 연기: ‘좋은 사람’이 사라진 세계

이병헌은 냉철함과 절망을 동시에 품은 인물을 완벽히 그려낸다. 그의 표정 하나하나에 죄책감, 계산, 분노가 공존한다. 그는 악인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다. 손예진은 오랜만에 강단 있는 캐릭터로 돌아와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박희순은 ‘정의’라는 단어를 흉기로 사용하는 인물로 등장해, 모든 장면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공기가 바뀌는 이유는 그의 대사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진실을 뒤틀어 이용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여유로운 미소 뒤에 감춰진 탐욕을 묵직하게 표현하며, 이 영화가 단순한 음모극이 아니라 ‘권력의 심리전’임을 각인시킨다.

3) 연출: 느리지만 단단한 긴장감

〈어쩔 수가 없다〉의 연출은 조용하다. 큰 폭발도, 화려한 추격전도 없다. 대신 인물의 시선과 침묵, 카메라의 정적인 구도가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린다. 감독은 “폭력은 말보다 느리게 온다”는 리듬을 택한다. 모든 사건이 대화에서 시작되고, 대화가 무너지는 순간 파국이 발생한다.

특히 한도현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지만, 거울 속에는 ‘자신이 버린 사람들’이 비친다. 이 장면은 한 컷으로 인물의 내면을 완전히 설명한다.

4) 비주얼과 색채: 현실과 도덕의 중간지대

색채는 철저히 차갑다. 회색빛 사무실, 푸른 야경, 그리고 어둠 속의 조명. 영화는 현실 세계를 ‘도덕이 희미해진 공간’으로 표현한다. 색감이 무채색일수록 인물의 양심도 흐릿해진다. 후반부 폭우 속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선택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대신 유리창, 거울, CCTV 화면 등 ‘투명하지만 왜곡된 시선’을 통해 사건을 관찰한다. 이는 진실조차 왜곡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5) 음악: 긴장과 양심의 경계선

음악은 최소한으로 사용된다. 피아노의 단조 리듬과 저음의 스트링이 불안감을 만든다. 사건이 고조될수록 음악은 멈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공포로 작용한다. 마지막 장면, 한도현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순간 들려오는 짧은 현악 멜로디는 그의 양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6) 주제: 인간의 합리화, 그 위험한 말 한마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 그대로 ‘도덕적 회색지대’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다. 모두가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영화는 그 말이 곧 악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선의의 타협, 정의의 왜곡, 침묵의 공모—all of them are sins. 감독은 관객에게 ‘너라면 다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결국 영화의 진짜 공포는 살인이 아니라, 양심이 조금씩 무뎌지는 과정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그 말 한마디로 스스로를 용서해버리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7) 결론: 차가운 현실, 뜨거운 질문

〈어쩔 수가 없다〉는 자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묵직하게 남는다. 이병헌의 절제된 연기, 손예진의 긴장감 넘치는 감정선, 그리고 박희순·이성민이 만들어내는 심리전의 밀도가 2025년 한국 스릴러 중 가장 인상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머릿속엔 한 문장이 맴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나요?” 그 질문은 영화 밖의 현실까지 스며든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도덕 감각을 되묻는 거울이다.

 


요약 정리

  • 🎬 영화: 어쩔 수가 없다 (2025.09.24 개봉)
  • 🎭 감독: (공식 미공개)
  • 🌟 출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 ⏱️ 러닝타임: 139분
  • 🎯 장르: 스릴러 / 심리 / 사회드라마
  • 💡 주제: 인간의 타협, 도덕적 회색지대
  • 평점: 7.2 (2025년 10월 기준)
  • 🎯 한줄평: 진짜 공포는 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