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기생충〉을 봤을 땐 솔직히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풍자 영화겠지’ 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히 잘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현대 사회를 해부한 작품’이었다. 보는 내내 웃겼다가, 섬뜩했다가, 마지막엔 묘하게 슬펐다. 이게 진짜 봉준호다 싶었다.
1. 지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영화는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으로 시작된다. 지하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 허리 아래만 보인다. 누군가의 다리, 담배 연기, 오줌, 배달통. 그게 이 가족의 세상이다. 그러다 아들 기우가 부잣집 ‘박사장네’ 과외를 맡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굴러간다.
이 가족은 머리가 좋다. 상황을 계산하고, 역할을 나누고, 치밀하게 침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응원하게 된다. 왜냐면 그들의 행동이 ‘절박함’에서 비롯된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이 너무 현실적이라 웃을 수가 없었다.
2. 웃음과 불안이 동시에 오는 연출
〈기생충〉의 가장 대단한 점은 ‘웃음’이다. 장르로는 스릴러지만, 중간중간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항상 불안이 숨어 있다. 봉준호 감독은 그 경계를 완벽히 이용한다.
가족이 부잣집을 점점 장악해가는 장면은 코미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이게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서 웃으면서도 손에 땀이 난다. 이 기묘한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3. 두 가족 – 같은 공간, 다른 세계
이 영화는 두 가족의 대비로 완성된다. 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 언덕 위에 사는 ‘박사장 가족’.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
박사장 가족은 아무 걱정 없이 ‘비가 오면 공기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비로 인해 기택 가족의 집은 침수된다. 이 한 장면이 모든 걸 말해준다. 비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누군가에게는 재앙이다. 그 간극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
4. ‘냄새’ – 이 영화의 핵심 단어
영화 내내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냄새’. 박사장이 무심히 “가난한 사람 냄새”를 언급하는 순간, 그 말은 칼처럼 기택의 마음을 찌른다. 그 한마디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그 냄새는 돈으로 가릴 수 없는, 사회가 만든 경계의 상징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이 사회는 그 냄새를 죄처럼 여긴다. 그 모욕감이 폭력으로 변한다. 결국 ‘기생충’은 그 냄새를 참지 못한 한 인간의 분노다.
5. 봉준호의 디테일 – 프레임마다 의미가 있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특징은 ‘계단’이다. 〈기생충〉에서도 계단은 상징처럼 쓰인다. 올라가면 부, 내려가면 빈곤. 단순한 구조지만 그 안에 수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특히 폭우가 쏟아진 날, 기택 가족이 언덕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긴 롱테이크. 그 장면은 압도적이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현실로, 희망이 사라질수록 절망으로 내려간다. 그 씬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왜 걸작인지 설명된다.
6. 장르의 경계를 허문 영화
〈기생충〉은 코미디, 스릴러, 가족극, 사회 드라마가 동시에 존재한다. 처음엔 웃기다가, 중반엔 긴장되고, 후반엔 피가 튀고, 마지막엔 먹먹하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봉준호 감독은 장르의 틀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미학이다. 웃음 뒤에 슬픔이 있고, 잔혹함 뒤에 현실이 있다. 관객은 그 모든 감정을 한 편 안에서 경험한다. 이건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물’이다.
7. 엔딩 – 꿈 같은 희망,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엔딩에서 기우는 다짐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집을 사겠다.” 그 장면은 꿈처럼 따뜻하게 보인다. 하지만 봉준호는 그걸 ‘환상’으로 처리한다.
결국 그 꿈은 현실이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지하에 있고, 아들은 여전히 그 위를 바라본다. 이 영화는 희망을 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게 너무 아팠다. 희망이 허상일 수 있다는 걸, 이렇게 예쁘게 보여준 영화는 처음이었다.
8. 나에게 남은 기생충 –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무서웠던 건, 그 ‘기생충’이 나 자신 같았다는 점이다. 나도 누군가의 공간에 기대어 살고, 누군가의 불편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마음이 불편했다.
〈기생충〉은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구조, 그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그게 불쾌하면서도 너무 정확했다.
9. 총평 –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걸작
〈기생충〉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대답할 수 없게 만든다.
완벽한 연출, 훌륭한 배우들, 그리고 무엇보다 섬세한 감정의 흐름. 이건 시대를 반영한 예술이다. 웃기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는 ‘지하 창문’이 그냥 창문으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