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넷플릭스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새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이 고전이 몇 번이나 리부트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2025년 버전은 진짜 달랐다. 그냥 “괴물 영화”가 아니라, “인간 영화”였다. 공포보다 철학이, 피보다 감정이 먼저 밀려온다. 보고 나면 묘하게 허무하고, 이상하게 따뜻하다. 이런 감정이 동시에 드는 영화, 오랜만이었다.
1. 시작부터 묵직하다 – 과학이 신이 되는 순간
영화는 눈보라 치는 고원에서 시작된다. 어둡고, 차갑고,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 속에서 한 남자가 ‘생명’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살아난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잃는 게 더 많아진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주제다. “창조와 파괴는 언제나 한 몸이다.” 이 문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오프닝이 압도적이다.
음악도 대단하다. 무겁게 깔리는 현악기, 절제된 소리, 심장 박동처럼 울리는 효과음이 ‘신의 영역을 넘었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영화 초반 10분 만에 ‘아, 이건 단순 리메이크가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2. 괴물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이번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외형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중심에 둔다. 괴물은 처음부터 나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다. 문제는 그걸 만든 인간들이다. “우리가 만든 것에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영화 내내 관객을 따라다닌다.
괴물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잔인하기보다 슬프다. 공포의 포인트는 피가 아니라 ‘시선’이다. 괴물을 보는 사람들의 공포와 경멸, 그 속에서 태어나는 외로움이 진짜 무섭다. 이건 단순한 괴수 영화가 아니라, “다름을 혐오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3. 주인공 빅터 박사의 광기 – 인간이 신을 꿈꾸는 순간
이번 버전의 빅터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완벽한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인간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의 눈빛, 손짓, 대사 하나하나가 점점 무너진다. 연기력이 너무 섬세해서, 정신이 붕괴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중반부, 괴물이 “왜 나를 만들었냐”고 묻는 장면은 소름 돋을 정도였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그 안에서 빅터의 눈이 흔들릴 때 관객도 같이 숨을 멈춘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무섭기보다 처절하고, 잔인하기보다 비극적이다.
4. 비주얼 – 고전미와 현대미가 섞인 완벽한 조합
〈프랑켄슈타인〉의 시각적인 완성도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에서도 최고급이다. 조명과 색감이 특히 예술이다. 빛이 항상 한쪽만 비춘다. 그건 마치 “신의 불완전한 창조”를 상징하는 것 같다. 차가운 회색과 따뜻한 노랑이 대비되면서 인간과 괴물,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그려낸다.
그리고 실험실 장면은 진짜 숨이 막힌다. 기계음, 증기, 피 묻은 천, 그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의 실루엣. 이건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다 써놓고도 하나도 진부하지 않다. 디테일의 힘이다.
5. 괴물의 독백 – 슬픔의 목소리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괴물의 대사다. “당신들은 나를 만들었지만, 나를 사랑하진 않았죠.” 이 한 줄이 모든 걸 설명한다. 괴물의 울음소리는 비명보다 슬프고, 그의 발자국 소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길을 잃은 듯 들린다. 감독은 괴물을 무섭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그를 이해하길’ 원한다.
결국, 우리가 괴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 자신’을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인간의 가장 오래된 공포다. “나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신이 되고 싶다.” 그 욕망이 만든 결과물이 바로 이 영화의 괴물이다.
6. 후반부 – 파멸보다 아름다운 절정
보통 이런 류의 영화는 끝이 뻔하다. 괴물은 죽고, 인간은 반성한다. 하지만 이번 〈프랑켄슈타인〉은 다르다. 마지막 30분이 진짜 명품이다. 괴물과 창조자가 눈을 마주보는 장면에서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 폭풍 속 실험실, 번개, 불길, 그리고 침묵. 이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맞물려서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 온다.
결말은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는 괴물이 아닌 ‘인간’을 심판한다는 거다. 그 마지막 대사 한 줄이 머릿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당신은 신이 아니라, 나와 같은 죄인이다.” 그 문장이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
7. 총평 – 고전의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난 인간 드라마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원작 소설의 철학을 21세기 감성으로 완벽하게 옮겨온 작품이다. 기괴한 설정 안에 인간의 욕망, 책임, 죄책감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공포영화지만, 사실상 철학 영화다.
그리고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괴물이 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버려질까 봐, 우린 결국 괴물이 되어간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슬픈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8. 마무리 감상 – 인간은 언제나 괴물의 반대편에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 조용해진다. 무섭지도, 속 시원하지도 않다. 그저 깊은 생각이 남는다. 괴물의 울음이 머릿속에 맴돌고, 그를 외면하던 인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괴물은,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고 믿는 인간’이 아닐까.
〈프랑켄슈타인〉은 공포의 껍데기를 쓴 인간성 탐구극이다. 보고 나면 허무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결국, 신의 역할을 흉내 내는 건 언제나 인간의 비극으로 끝난다.